[총괄리뷰]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完

2018. 9. 16. 14:47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 한글원제
제목부터가 아이러니다. 진아는 누나로서 동생 준희한테 밥을 사준 적이 단 한번도 없다. 딱 한번 기회가 있었는데 그 마저도 준희가 밥을 샀다. 준희는 오랜만에 처음 만난 그때부터 누나가 아니라 여자로 느꼈고 자신도 더이상 동생이 아니라 남자로 보이고 싶어했다. 물론 연애 이후에는 번갈아가며 밥도 사고 데이트 비용도 대고 했겠지만 이때는 남녀사이이므로 논외로 하겠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지만 밥을 한번도 사준 적이 없는 드라마... 제목이 재치있고 신선하긴 해도 내용 전체를 가로지르는 일관성과 통일성 측면에서 적절했는가는 의문이 남는다.

Something in the Rain - 영어부제
‘비오는 날 우산 속에서 시작되어 완성된 사랑’ 한글원제보다 오히려 의미가 확 와닿는다. 차라리 영어제목을 사용했더라면 드라마가 더욱 빛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줄거리 한줄 요약
- 신호등같은 사랑이 이루어졌다 -

드라마 간단평
- 드라마를 보면서 인생을 배웠다. 한편의 긴 영화같은 드라마였다 -

그 외의 것들
군더더기 하나 없는 깔끔한 대본, 신들린 듯한 연출, 출연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생활연기, 아름답고 환상적인 OST까지... 명품드라마가 갖추어야할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드라마였다. 특히 올드팝이 삽입되어 익숙하면서도 가벼운 요즘 연애 세태에 묵직함을 더해주는 역할을 했다. 우산, 공원, 자전거 등 아날로그적 감성을 담은 소품을 활용한 연출은 연애에 진중함을 더해줬다.( http://smlounge.co.kr/woman/article/38444 에서 내용 일부 참고)

진아와 준희의 사랑

진아와 준희의 사랑은 이 한 장면에 모든 것이 담겨있다. 진아를 중심으로 준희가 맴돌면서 가까워졌다 멀어지고, 멀어질거 같으면 진아가 잡으러 다니는 연출에서 난 솔직히 전율했다. 드라마를 끝까지 다 본 시청자들은 내가 묘사한 장면이 무슨 내용인지 머리속에 들어와 박힐 것이다.

진아

진아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서 유일하게 성격변화를 크게 겪는다. 미련하고 착해빠져서 여러가지 사회적 압력을 당연한 듯 견디다가 준희와의 연애 이후부터는 회사나 집안에서 자기 목소리를 당당하게 내기 시작한다.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기고 지키는 것이 준희를 위하는 길임을 알았기 때문. 한국사회의 부당한 압력에 맞서 독립을 선언하고 이후 대응 방법을 준희와 함께 모색해 나가길 원했으나 결정적인 순간 준희는 도피를 선택했고 헤어짐은 필연적이었다.

이 드라마는 ‘진아의 성장기’를 그리고 있다. 준희와 아낌없는 사랑을 주고 받으며 어른으로 훌쩍 성장했다. 결혼까지 염두에 두고 준희가 그토록 싫어하는 아버지까지 챙기는 마음씨를 보면서 정말 어른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준희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랑이 더 깊고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초록우산이 등장하는 장면을 유심히 살펴보면 처음부터 우산을 같이 쓰고 걷다가 갑자기 진아가 우산을 들고 혼자 내달리고 준희가 따라 달려간다. 진아의 마음은 훨씬 저만치 앞서가고 준희는 뒤따라 오는 것이다. 이런 사랑이 있었기에 3년을 뚝심있게 버텨냈고 준희 뿐만아니라 주변사람들까지도 변화를 이끌어냈다. 이기적이라고 욕먹었지만 나는 한국드라마에서 이러한 여성상을 그리는 작품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준희

준희가 진아한테 아낌없이 사랑을 쏟았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진아의 사랑보다 더 깊고 크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진아가 변화하고 성장한 만큼 발맞춰 따라가야 했으나 준희한테는 이별의 아픔을 겪는 시간이 필요했다. 마지막회에 이르러서야 준희는 사랑을 다시 확인하고 세상에 당당하게 맞설 용기를 냈으며 진아와 다시 이어질 수 있었다.

금보라

진아의 직장동료이자 친구 그리고 두 사람의 든든한 지원군 역할까지. 드라마에서 특별히 애정이 가는 캐릭터다. 여성으로서의 자의식이 강하고 틀에 얽매애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다. 역시 예상대로 회사를 비교적 이른 나이에 그만두고 제주도로 내려가 자리를 잡았다. 두 사람의 연애를 맨 처음으로 우연히 알게됐고 진심으로 잘 되길 바랐던 금보라. 그녀의 집에서 진아와 준희가 다시 만난 것은 그래서 더 아름답고 애틋하게 느껴졌다.

인간으로 사회를 그리다.

인간사회 집단의 규모가 커지면서 사회는 시스템에 의해 운영된다. 시스템은 생존에 유리한 방식으로 효율성과 안정을 추구하며 사람을 틀에 가두고 압력을 가한다.
김미연은(진아엄마) 자본주의 시스템 하에서 그 가치관들을 철저하게 몸소 체득한 인물이다. 남편은 은퇴했지만 대기업 임원출신이고 아들은 카이스트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등 자존심과 자부심도 대단하다. 돈, 명예, 권력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남자의 조건을 최우선으로 고려한다. 준희는 그래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사윗감이었다. 진아에게 압력을 가했지만 도가 지나치면 폭력이 되는 법. 결국 딸을 집에서 내쫓고 나중에는 제주도로 멀리 보내버렸다. 

회사 역시 진아한테 불합리하고 부당한 것들을 감내하라고 요구했다. 업무 외적인 부분에 대해 진아가 저항하기 시작하자 멀리 밀어내고 지리한 법정공방으로 몰고가 그녀를 집어 삼키려했다. 오랜 싸움 끝에 승소하고 회사를 떠나는 진아를 보면서 안쓰럽기도 하고 지나치게 현실적으로 그려진 탓에 씁쓸하기도 했다. 어쨌든 진아는 대단한 여자다.
이 드라마에서 한국사회의 압력에 대처하는 인물 유형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감내하고 다른데서 행복을 찾는 사람들, 적극적으로 대항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피해를 입을까 두려워 방관하는 사람들, 준희처럼 도피를 선택하는 사람. 어떤 삶을 택하든 반드시 옳은 것은 없다. 종국에는 그래서 행복한가? 라는 질문만 남는다. 행복하다면 나름의 삶에서 의미를 찾을수 있을테니까... 진아는 긴 시간 외롭고 힘들었지만 소중한 사람을 다시 찾았으니 행복한 삶을 살 것이다.

 

 

 

지인 작가, 영화평론가

destiny213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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