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2회 - 빨강우산 -
2018. 6. 23. 18:54
2회 리뷰부터는 마지막회에 대한 내용 누설이 있습니다. 원치 않으신 분들은 드라마를 다 시청하시고 읽어주세요.
이 드라마에서는 회사내 성추행 문제가 다뤄진다. 노래방에서 공철구가 어찌나 몸을 더듬던지 불쾌했다며 하소연하는 후배. 이어지는 대사가 재밌다. "너한테 맡기고 온 내가 잘못이다. 다음엔 내가 다 커버해줄게 오늘은 그냥 퉤퉤퉤하고 그냥 잊어버려" 성추행의 근원을 제거하려는 노력이 아니라 다음엔 기꺼이 너 대신 내가 상대해 주겠노라는 태도다.
진아는 준희를 만나 진짜 사랑을 알기 전까지는 그렇게 살아왔다. 준희를 만나고 자신을 더욱 사랑하게 되자 전에는 대수롭지 않은 것들에 대해 불편해하기 시작했다. 자기애가 더욱 강해져서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으로 변화한다. 그러나 조직의 저항은 만만찮았다. 먼 곳으로 밀려나 홀로 버텨낸 고통의 시간들이었다.
친구와 친척들한테서 온 청첩장을 보며 결혼할 상대방 집안 얘기를 꺼내는 진아네 부모. 여기서 엄마의 속물적 근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딸의 행복을 위해서 조건을 우선했지만 진아는 오히려 그런 남자들을 만나 불행했다. 하지만 진아는 준희를 만나 제일 행복해 했다.
한국에서 남녀가 만나 결혼하는 것은 매우 피곤한 일이다. 유교문화가 뿌리박힌 한국에서는 결혼을 집안 대 집안의 결합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이것저것 재고 따지는 것들이 많은데 이 과정에서 결혼 자체가 무산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관계맺기의 복잡성 때문에 젊은이들이 지쳐 나가떨어진다. 시대는 변해도 어른들은 여전히 과거의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본인이 게을러 결재를 안한 잘못을 윤진아한테 덮어 씌우려는 남호균 이사. 정영인 부장한테 걸려 제대로 당하고 있다. 우리 드라마에서는 고위급 남자직원들의 무책임과 무능이 강조되고 있다. 문제는 아랫사람들에게 책임이 전가되어 힘들게 만든다는 것. 가맹점주와의 마찰로 동분서주 열심히 수습하고 다니는 윤진아 임에도 가차없다. 잘못을 저질러놓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부하직원을 매정하게 희생시킨다. 우리나라 조직 문화의 서글픈 현실이다.
술집에서 마주앉은 두 사람. 사소한 오해로 티격태격 거리다가 비가 내려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아름다운 진아와 준희.
이어지는 대사가 재밌다. "야, 남자들은 이쁘면 그냥 마냥 좋냐?" "좋지" "재수없어" "누나가 더이뻐”
이쁘면 좋냐고 물었는데 누나가 더 이쁘다고 대답했으니 누나가 좋단 말과 다르지 않다. 돌려서 말했지만 순간 진아는 당황했고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고백만 하지 않았을 뿐 이미 두 사람의 마음은 서로를 향하고 있었다. 사실상 진아와 준희의 사랑은 이때부터 시작됐다고 보면 된다.
드라마에서 비와 우산은 두 사람을 묶어주는 강력한 장치로 등장하는데 이는 마지막회까지 쭉 이어진다. 그런데 이 장면이 매우 흥미롭다. 가서 우산을 씌워 줄 수도 있었는데 왜 굳이 오라고 했을까. 비가오면 우산은 비를 피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만들어준다. 그 공간은 준희의 마음을 비유한다. 준희는 오라고 손짓하고 진아는 비를 맞으며 그 공간으로 쏙 들어간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공간활용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드라마가 예술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면 아마도 우리 드라마같은 모습일 것이다. 이는 마지막회까지 이어지는데 이번에는 진아가 성큼성큼 다가가 우산을 씌워준다. 오랜시간 멀리서 돌아와준 준희를 진아의 마음이 품어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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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희는 진아한테 빨강우산을 선물로 줬다. 준희 마음의 징표인 빨강우산이 이렇게 진아한테 건너갔다. 나중에는 진아가 준희한테 준 초록우산까지 모두 진아한테 건너오게 되고 진아는 이것들을 버리고 제주도로 떠난다. 그리고 노랑우산 아래서 다시만나 고단했던 사랑을 완성시킨다.
이처럼 우리 드라마는 우산 아래서 시작해 완성된 작품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사실 한글원제보다 영어제목인 'Something in the Rain"을 더 좋아한다. 뭐라고 번역해야 할지 애매하지만 영어가 오히려 드라마를 빛내주고 있지 않은가.
지인 작가, 영화평론가
destiny213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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