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11회 - 아픔과 상처 -
2018. 9. 16. 12:27
늦은 밤 김미연이(진아엄마) 갑자기 찾아오자 준희는 부탁했다. 상처가 너무 클거 같으니 조용히 보낼 수 있게 해달라고. 김미연이 찾아온걸 모르게 하려고 거짓말하면서까지 진아를 조용히 보내놓고 뺨을 맞고있다. 준희가 심적 고통이 있긴 했어도 이렇게 맞은건 처음이다.
그러면서 진아엄마가 내뱉는 말들이 소스라치게 소름끼친다. 준희를 위하는 척 떼어내려는 설득이 안먹히자 안면을 싹 바꾸고 가감없이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리고 살려면 힘을 가져야 한다면서 자신의 기준에 준희는 한참 못 미친다고 말한다. 준희 마음에는 아마 비수가 날아와 꽂혔을 것이다.
진아의 나이를 감안할 때 엄마의 나이는 60대로 추정되는데 비슷한 나이의 어른들이 이 장면을 봤다면 아마 매우매우 불편했을 것이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가 다 그렇다. 지나치게 현실적으로 그려져서 사람의 속내를 건드린다. 드라마란 때로는 인간의 판타지를 충족시켜주는 면도 있어야 하는데 달콤한 사랑이 내리막길을 걷고 현실에 자꾸만 부딪히자 감추고 싶었던 속마음들이 가감없이 표출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준희가 계속 전화를 안받자 진아는 이상한 느낌이 들어 준희를 다시 찾아간다. 조금전 배웅하러 나왔을 때도 뭔가 무거운 분위기를 느꼈던 터였다.
그렇게 준희의 집으로 다시 갔는데 엄마와 준희가 있다. "왜 거짓말해. 왜 거짓말 했어 왜!" 진아가 준희한테 화나서 큰소리로 소리친건 이번이 처음이다. 진아가 상처입을까봐 숨긴건데 거짓말이 드러나자 진아는 더 큰 상처를 받는다. 사람들은 늘 그러고 산다. 나역시 마찬가지다.
진아가 보는 앞에서 준희가 두들겨 맞고 있다. 이때 두 사람의 심정은 어땠을까? 엄마는 정말 답도없는 인간이다.
늘 즐겁고 행복했던 식사시간마저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는다. 한동안 말없이 서로의 눈치를 보며 불편하고 어색한 기분이 역력하다. 말을 주고 받기는 하지만 주제는 무겁고 힘든 내용 뿐이다. 이런식으로 두 사람이 함께했던 공간은 점점 어둡게 가라앉고 헤어지는 연인 코스를 그대로 밟아나간다.
승호가 회사에 놀러와 팁을 하나 알려준다며 말을 꺼낸다. 세상의 대부분의 엄마는 역할을 좋아한다며 엄마한테 의지하고 의논하는 척 하면서 살살 꼬시면 된다고 알려준다.
이때 승호를 바라보는 준희 표정이 씁쓸하기도 부러워해 보이기도 했다. 안정된 가정에서 부모의 보살핌을 받으며 배울 수 있는 삶의 지혜를 준희는 갖지 못했기에... 어릴 때는 아빠의 여성편력 때문에 엄마가 늘 고통받았고 막 20살이 되었을 때는 엄마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진아의 아버지가 우려했던 것도 바로 이런 지점이었다. 준희를 말못할 아픔을 장면 하나에 고스란히 담아주신 감독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정영인 부장이 조용히 찾아와 증언을 강요하진 않겠지만 무거운 짐 맡긴거 같다며 진아한테 미안해한다. 그러면서 태블릿을 진아한테 건네고 자리를 떴다.
회사내에서 성추행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지는데도 진아는 여전히 매장에서 일하는 중이다. 최대 피해 당사자인 진아가 이렇게 계속 외근중이라서 사내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전혀 통제하지 못한다. 진아가 사내 근무중이었다면 흘러가는 여직원들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일방적으로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강세영은 분위기를 주도하여 피해자로 찍힐 경우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며 여직원들을 흔들어놓는다.
이 부분에서도 이렇게 회사와 진아의 거리두기를 통해 진아를 고립시키고 나중에 회사에 복귀했을 때는 주위에 아무도 없이 혼자 덜렁 남게된다. 이런 치밀한 구성에서 나는 작품성을 느낀다.
회사에 잠시 들른 진아는 준희와 아마도 사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두 회사가 매우 가깝기도 하고 소문으로 듣는 것 보단 먼저 얘기하는 편이 준희를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장면을 대사가 거의 들리지 않게 처리한 것은 인상깊다. 진아 스스로 감당해야하는 몫이지만 그래도 준희가 알아야 하는 일이었다.
엄마가 일방적으로 선자리를 정하고 진아한테 통보하자 부모 간에 다툼이 벌어진다. 개인의 자유를 우선한다는 아빠. 이에 반할 시 내집에서 다 나가라고 소리 친다. 준희와의 연애가 이제는 다툼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진아는 부딪혀봐야 절대 져주지 않는 엄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준희와 잘 되기 위해서는 엄마의 반대를 어떻게든 해결해야하는데 엄마랑 맞서다보면 상황은 악화될게 뻔했다. 그래서 준희와의 점심약속도 뒤로 미루고 거짓말 하면서까지 선보러 가기로 결심했다. 아빠한테 "준희 때문에 선보러 나가는거야."라고 했던 것은 그런 의미였다.
여기서 추측해 볼 수 있는건 두가지 정도다. 첫번째는 아빠의 말처럼 엄마가 원하는대로 해주면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의도였을 수 있다. 두번째는 이미 정해진 선자리니까 엄마한테 져주는 척 한번 들어주고 다시는 선자리 얘기 못꺼내게 하려고 했던 것. 준희 때문에 선보러 나간다는 말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함축되어있기 때문에 이런 속사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시청자들한테 엄청난 욕을 먹었다. 나조차도 처음에는 기분이 살짝 나쁠 정도였으니까.
우리 드라마에서는 인물을 잘 관찰하고 그 입장을 깊이 이해해야만 대사와 행동이 감독의 의도대로 들린다.
진아는 격식있게 차려입고 화장을 한 채 선을 보러 나간다. 진아는 선 보러 나갈 때마다 똑같은 차림새와 화장을 하고 나갔었다. 화장을 하는 진아를 두고 이해가 안간다는 시청자들이 많이 있었는데 큰 의미를 둘 필요가 전혀 없다. 이러한 것들은 의례적인 형식, 껍데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 드라마에서 이런 모습은 대체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로 그려진다. 화장을 해도 준희 앞에서나 정말 예쁘게 보일까 화려한 조건남 앞에서의 진아는 늘 불행했다. 마지막회에서 준희와 3년만에 마추쳤을 때도 불행한건 마찬가지였다.
호텔에 도착해 들어가려다 돌아 나오고 있다. 막상 선보러 나오기는 했지만 왠지 준희한테 죄를 짓는거 같아 마음이 불편했을 것이다. 만나기 싫었을 것이다.
돌아나오다가 아버지를 만나러 호텔에 도착한 경선이랑 마주쳤다. 준희 몰래 선보러 온 걸 알고 경선이는 "너 지금 선보러 온거야? 미친거야? 제정신이냐고? 준희는 뭔데, 준희는 뭔데 ~"하고 소리질렀다. 아마 거의 모든 시청자들이 경선이와 똑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선보러 가는 진아를 보며 한숨을 푹푹 쉬었던 터라 너무나 가슴아팠다. 두 사람의 입장이 너무나 잘 이해가 갔기 때문에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지인 작가, 영화평론가
destiny213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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